자녀 교육의 성공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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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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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간경변증에 걸린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하여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 사연이 있다. 주인공은 강원 원주시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중사로 복무 중인 전미화 씨(33). 전 씨의 아버지에게 병마가 찾아온 건 지난해 여름. 갑작스럽게 병원에 실려 간 아버지는 급성 간경변증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간 이식 수술. 남은 시간은 3개월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입에서 이식이라는 말조차 못 꺼내게 했지만 전 씨는 언니와 함께 몰래 간 이식 적합성 검사를 받았다. 전 씨는 매일같이 ‘제발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 몸이 약한 언니에게는 돌봐야 할 자녀가 있었다. 그렇게 보름 뒤, 전 씨는 업무 중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울었다. 아버지와 혈액형도 다르고 간의 크기도 작지만 이식을 할 수 있다고, 기적 같은 조건이라는 소식이었다.
전 씨는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또 화도 낸 끝에 한 달 만에 이식 허락을 받아냈다. 강인한 군인으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던 아버지는 딸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2012년 9월 14일, 딸과 아버지는 각각 13시간과 18시간이라는 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현재 전 씨의 아버지는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수술 6개월 만에 대장, 간, 폐에서 암이 발병해 투병 중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전 씨는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 아빠는 본인이 ET 같다고 하시는데, 늘 말씀드리지만 아빠는 두상이 예뻐서 어떤 스타일을 하셔도 미남이세요”라고 위로 하였다고 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고 개탄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런 따듯한 이야기가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면, 우리들의 자녀는 과연 엄마, 아빠를 위해 간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자녀교육의 성공을 공부를 잘 시켜서 세상에 보란 듯이 자랑하는 것을 내세우기도 하는 데, 세상이 보란 듯이 성공한 자녀는 아마 바빠서, 간이 아니라 병원비도 내기도 힘들지 않을까? 우스갯소리로 ‘성공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 ‘빚 있는 아들은 내 아들’라고 하는데, 우스갯말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띠라서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은 구지 물질이나 양으로 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유명인이 되지 않아도, 돈을 잘 벌어서 부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위의 전씨의 예와 같이,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고 정말 부모를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은 자녀가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교육의 성공이다. 이것을 모르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것 같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다해주고, 과외도 시키고, 좋은 것을 다 사주면서 기죽지 않는 아이로 키우려고 한다. 그러면 그 자녀는 성공은 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 성공이 부모의 가슴에 눈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렇게 성공한 자녀는 부모의 고생을 알아도 모른 척, 양심에 빗장을 채우고 부모를 마음으로부터 귀향 살이 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을 원한다면, 자녀를 사랑으로 보듬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자녀에게 전이가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어릴 때를 보더라도 그것은 명약관화해 진다. 60~70년대 부모는 자녀에게 풍족한 물질은 공급하지 못했지만, 정성과 사랑만큼은 최고였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가난함 속에서도 눈물로 자녀를 키웠고, 가시고기 같은 희생으로 자녀를 키웠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의 눈물과 희생을 배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세상은 점점 그 시대에 적응해가며 그런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시대의 조류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라고 동화해 간다. 그러나 기독교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세상을 보아왔기 때문에,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세상이 옳은 것보다 말씀의 바른 편에 서야 한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면, 어리석어 보여도 말씀을 따라가야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있고, 그로인해 세상이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전 씨는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또 화도 낸 끝에 한 달 만에 이식 허락을 받아냈다. 강인한 군인으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던 아버지는 딸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2012년 9월 14일, 딸과 아버지는 각각 13시간과 18시간이라는 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현재 전 씨의 아버지는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수술 6개월 만에 대장, 간, 폐에서 암이 발병해 투병 중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전 씨는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 아빠는 본인이 ET 같다고 하시는데, 늘 말씀드리지만 아빠는 두상이 예뻐서 어떤 스타일을 하셔도 미남이세요”라고 위로 하였다고 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고 개탄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런 따듯한 이야기가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면, 우리들의 자녀는 과연 엄마, 아빠를 위해 간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자녀교육의 성공을 공부를 잘 시켜서 세상에 보란 듯이 자랑하는 것을 내세우기도 하는 데, 세상이 보란 듯이 성공한 자녀는 아마 바빠서, 간이 아니라 병원비도 내기도 힘들지 않을까? 우스갯소리로 ‘성공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 ‘빚 있는 아들은 내 아들’라고 하는데, 우스갯말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띠라서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은 구지 물질이나 양으로 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유명인이 되지 않아도, 돈을 잘 벌어서 부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위의 전씨의 예와 같이,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고 정말 부모를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은 자녀가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교육의 성공이다. 이것을 모르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것 같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다해주고, 과외도 시키고, 좋은 것을 다 사주면서 기죽지 않는 아이로 키우려고 한다. 그러면 그 자녀는 성공은 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 성공이 부모의 가슴에 눈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렇게 성공한 자녀는 부모의 고생을 알아도 모른 척, 양심에 빗장을 채우고 부모를 마음으로부터 귀향 살이 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을 원한다면, 자녀를 사랑으로 보듬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자녀에게 전이가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어릴 때를 보더라도 그것은 명약관화해 진다. 60~70년대 부모는 자녀에게 풍족한 물질은 공급하지 못했지만, 정성과 사랑만큼은 최고였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가난함 속에서도 눈물로 자녀를 키웠고, 가시고기 같은 희생으로 자녀를 키웠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의 눈물과 희생을 배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세상은 점점 그 시대에 적응해가며 그런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시대의 조류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라고 동화해 간다. 그러나 기독교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세상을 보아왔기 때문에,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세상이 옳은 것보다 말씀의 바른 편에 서야 한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면, 어리석어 보여도 말씀을 따라가야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있고, 그로인해 세상이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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