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의 허구

1,737 2013.10.0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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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기독교의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성경적인 내적 치유라는 것이다. 내적치유 사역자들은 하나같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성경의 구절을 내적치유 사역에 접목을 하면서 성경이 말씀하는 내적치유는 이렇다라고 설명을 하며 내적치유가 마치 하나님께서도 허락하신 하나의 치유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고, 전혀 성경과는 관련이 없는 내적치유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경적인 내적치유는 자신들의 치유를 다분히 기독교 적이라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도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성도들이 성경을 잘 몰라 그렇게 말하면 그런 것인가 하고 속아 넘어 가도 있는 것이다.

 원래 내적치유라고 하는 것의 유래는 심리학에 근간을 두고 있어 성경과는 전혀 무관하다, 내적치유를 말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내적치유의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인간의 죄성을 무시한 상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간 속에 내제된 상처가 세월을 두고 아물지 않아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폭력적, 비이성적, 반인륜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으로 그 내제된 상처 즉 자아 속에 있는 ‘내면의 아이’를 끄집어 치료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 다고 하여 ‘내면의 아이’를 끄집어내기 위해 과거의 어릴 때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최면을 걸어 과거의 자아를 들추어 지워버리게 한다든지, 또한 과거 속으로 들어가 상처 준 사람에게 욕을 하고, 분한 마음을 다 토로하게 하는 등으로 과거의 치유가 곧 현제의 치유가 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전혀 성경과 상치 되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속사람 즉 내면의 아이는 상처투성이인 속사람이라고 말하며 성경에서 말씀하는 속사람을 전혀 다르게 소개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속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변화 된 마음을 즉 겉 사람과 반대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속사람이다. 그럼에도 내적치유 사역자들은 속사람을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로 보고 끊임없이 그 속사람을 끄집어내어 상처가 있다고 하라 하면서 오히려 속사람을 상처받은 영혼이라고 믿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이미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과거와 상처와 아픔은 더 이상 상관이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구지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고 상처받았던 과거로 인해 더 아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이미 우리는 상처가 됐든 죄가 됐든 용서받았고, 치유가 되었다. 믿고서도 아직도 과거에 집착하고 그 과거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거나, 온전히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내면에 있는 아이로부터 오는 상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어수선하여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그로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다양한 치유를 요하기도 한다. 이런 것에 편승하여 성경을 빗대어 내적치료를 한다고 하면서 많은 성도들을 비 성경적이며, 다른 종교의 세계를 접촉하게 하고 있다. 내적치유의 가장 큰 잘 못은 상처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으로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며, 인간의 내면에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면서 초혼 술과 같이 영혼의 끄집어 낼 수도 있을 것처럼 자꾸 과거의 나를 보라고 하는 것과 뉴에이지 사상과 같이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을 것처럼 하나님은 단지 인간의 치유의 보조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그래서 ‘잘 되는 나’ ‘치유가 된 나’만 있고, 죄인은 없고 상처 준 사람밖에 없는 그런 모순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인이다. 그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주는 사람, 상처 받는 사람이 생겼을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하고 보혈의 피로 죄 씻음을 정말 경험하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이미 우리는 전인격적으로 치유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사람은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되었다(엡3:16) 다시 내면의 아이를 끄집어 낼 필요도 상처 준 사람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구원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얄팍한 학문에 속지 않아야 한다, 또 다른 나를 치유하기 위해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야 한다. 과거의 나에 집착하지 않아도 오늘 예수님을 잘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용서할 것을 용서하고 마음에 평화를 누리고 꿈을 꾸고 비전을 가져도 과거가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주서택, 정태기 목사의 내적치유, 애니어그램, MTBI, 기질론, 혈액형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아도 우리는 예수님 한 분으로 이미 충분히 우리의 건강 미래를 꿈꾸고 설계할 수 있다.         

 참고도서 : 정태흥 목사 지음 ‘내적치유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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