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옥한음 목사가 오정현 목사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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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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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오정현 목사에게
주님께서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주시기를 바란다. 화요일 만나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알려 주는 것이 너를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자 적어 보낸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빈다.
5년 전 오 목사를 사랑의교회 제2대 목사로 초빙할 때에는 여러 가까운 목사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자주 피력하였지만 나는 마음이 평안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확신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 확신이 주님의 선하신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제자 훈련 목회 철학으로 무장한 지도자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삼백 명의 양 떼를 위해 달동네에서 평생을 헌신한 존경스러운 부친의 등을 바라보면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내 후임이 되어도 절대 자기의 인간적인 야심을 비전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로 싸서 대형 교회의 힘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아니하는 양심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강해 설교가 좀 약한 편이지만 사랑의교회 강단에서 섬기게 되면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하여 나를 능가하는 탁월한 설교자가 될 것이다. 3년만 지나면 사랑의교회는 세상이 대적하지 못할 말씀과 성령의 큰 능력으로 무장한 제자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나의 이런 확신이 가끔 흔들리는 것 같아 고민이다. 며칠 전 나이가 지긋한, 지명도가 높은 모 목사님이 편지를 보내왔다. 오 목사가 마음껏 자기의 비전을 펼칠 수 있도록 풀어 주라는 것이다. 자기가 듣기로는 옥 목사가 오 목사의 발목을 잡고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루머가 왜 돌고 있는 것일까? '3년만 넘기면 내 마음대로 목회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리는 가끔 들었지만, 이런 편지를 가지고 충고하는 사람이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다. 무엇이 그렇게 부자유스러운지, 그래서 목회에 얼마나 지장을 받고 있는지 내가 묻고 싶다. 지금 상황에서 발목이 잡힌 목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오 목사는 정말 오만하고 분수를 모르는 무서운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4년 동안 너의 문제는 너무 자유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내가 원로로서 정말 못된 짓을 한 것이 있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겠는데, 내 양심이 마비되어 그런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더 괴롭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나의 가슴을 찢어 놓는 일이 또 있었다. 나는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한 달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뉴스앤조이>에 들어가서 김종희 기자의 글과 그 기사에 대한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지 댓글을 좀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사실 오 목사가 쓴 '대운하', '광우병'에 대한 <국민일보> 칼럼을 읽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이었다고 말한 설교도 들어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막상 인터넷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오 목사와 함께 사랑의교회는 물론 나까지 싸잡아서 저질적인 표현으로 비난하는 글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 목사를 변호하는 글들은 불과 몇 개 되지 않았다. 오 목사가 바른 소리를 했는데 그처럼 동네북이 되었다면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 함께 무덤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비판자의 지적처럼 오 목사는 목사로서 이 사회의 밑바닥 민심을 너무 읽지 못한 경솔한 소리를 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질이 좋지 못한 일부 네티즌들이 하는 소리로 무시해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오 목사를 헐뜯고 사랑의교회를 비판하고 옥 목사를 의심하는 말에는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다소의 진실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 목사와 만나 다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너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너의 정체가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는 내 속에 소리 없이 쌓이는 불신의 먼지를 털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원로는 되도록이면 빨리 죽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상 후임자와 한배를 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다. 내가 평생 생명처럼 사랑한 양 떼들을 위해서다. 그들을 위해 지도자 된 우리는 좋지 못한 일로 욕을 먹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돌을 맞아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회가 본질을 벗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지도자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처럼 "내가 잘못했다. 새 종이를 내놓고 다시 그려야 한다"고 하는 양심적인 결단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1.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권력과 밀착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2. 이명박 대통령 정책 지지 발언. 공인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사랑의교회가 비록 강남에 위치해 있지만 이 나라의 1%도 안 되는 강남의 가진 자들을 위한 교회라는 이미지를 준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오 목사는 이상하게도 밖으로는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소망교회 담임이었으면 좋았겠다는 말도 듣는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 본 일이 있는가?
3. 중국 종교성 관리들과의 여러 차례 접촉. 정권 유지를 위해 입맛대로 기독교를 이용하고 있는 공산 정권과 만나 무슨 선교를 협의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선교 본질에도 벗어나는 일이고 아직도 핍박받고 있는 중국 성도들을 무시하는 짓이 아닌가? 중국 정부와 접촉하는 일에 한국교회 아니면 사랑의교회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4. 글로벌 시대의 교회 비전이 필요하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지금 사랑의교회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는가?
5. 하나의 지역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은 한계가 있다. 사랑의교회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만 해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계속해서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6. 양 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양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람에게 멸시당하고 사회에서 버림받으면서 교회를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목회자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사랑의교회 안에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을 위해 오 목사가 무엇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단에서 몇 마디 하는 립서비스는 가증스러운 짓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밖으로 도는 시간을 절약해서 주님이 가까이 두기를 원하시는 이런 자들과 함께 울고 웃어 주는 목회자가 진정한 주의 종이요 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7.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함께 국내 서민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때에 그들의 정서에 역행하고 부자 교회의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이 보이는 이벤트(창립 30주년 기념 잠실 체육관 행사, 작년에 이어 다시 계획하는 손니치 여행 집회)들을 계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8. 교리 설교의 스타일과 내용을 수정할 용의가 없는가?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인 신학교에서도 '하나님', '구원', '성화'와 같은 무거운 주제는 40~50분 안에 다 가르치지 않는다. 제자 훈련에서도 한자리에 앉아 3시간 이상 다루는 주제들이다. 그래도 어렵다고 야단들이다. 교리 설교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언젠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배고픈 아이들 앞에서 요리 강좌를 하면 안 된다고. 교리 설교는 무거운 주제일수록 몇 번을 나누어서 가르쳐야 하고 소제목 하나마다 평신도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화하는 양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제목을 줄줄이 엮어 내려가는 단편적인 지식이 설교라고 보지 않는다. 머리만 복잡하게 만들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별로 없는 설교는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입장을 바꾸어 누가 신학 박사인 너에게 그런 식으로 한꺼번에 교리를 이야기한다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보는가?
9. <Christianity Today> 한국판 발행과 함께 신학적으로 예민한 칼럼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논쟁이나 비판이 일어날 때 누가 책임지고 대처할 생각인가? (예 : 리차드 마우, <관대한 복음>)
10. 교회 안에서만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는 인구가 2만 명이 넘을 것이다. 모든 정보가 삽시간에 퍼지고 있다. <뉴스앤조이>도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제일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알면서 침묵하고 있는 다수다. 그들은 언제나 잠재적인 위기 아니면 도전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대비할 생각인가?
나는 우리 둘이서 만날 때에는 기쁘고 소망스럽게, 그리고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대화를 나누기를 얼마나 소원하는지 모른다. 물론 원로와 후임자의 사이는 생태적으로 고부간과 같아 쉬운 일이 아닌 줄 알지만 노력하면, 특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품으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번과 같은 긴장된 대화가 다시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날마다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물론 나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2008. 6. 1. 옥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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